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종법제도 2] 종법제도로 바라본 한국인 (체면이란 무엇인가?)

주나라의 왕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라는 서로 다른 두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종묘는 국가의 신인 역대왕을 모시며 하늘(天)에게 지내는 제사이고, 사직은 대지와 곡물의 신에게 드리는 제사였다. 



(종묘, 출처: 위키피디아,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

즉, 사직의 사(社)자는 토지의 신을 나타내고, 직(稷)은 곡물 신을 나타낸다. 



(사직단,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1-28)


결국, 주나라는 하늘과 땅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했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최고의 신이었던 하늘(天)은 원래 주(周)족의 조상신이 아니었다. 

주(周)족의 조상신은 후직(后稷)이었다. 

후직은 군장을 뜻하는 후(后)와 곡물을 뜻하는 직(稷)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후직 석상)


글자 그대로 후직은 곡물 신을 뜻한다. 

따라서 주 왕실은 원래 자신의 조상신인 하늘(天)을 버리고, 자신의 조상을 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주나라의 조상신인 후직은 다른 부족들을 이끌 만한 보편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주 왕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 당시 최고의 신이었던 하늘(天)을 자신의 조상신으로 삼았다. 

즉 주나라는 하늘(天)을 자신의 조상신으로 삼음으로서 은나라 때의 조갑처럼 자신의 조상신에게 최고의 영적 지위를 부여했다.

또한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주나라는 자신의 가문이 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당시 다른 제후국들의 반란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주나라 왕은 자신을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천자(天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왕은 지상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신의 아들(天子)이 된 것이다. 

즉 이후로 천명을 받은 군주는 천자가 되고, 천자는 하늘을 대신해 천하를 지배해야 하는 유일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이전에 하늘(天)을 정점(頂點)으로 했던 영적 위계는 종법을 통해서 혈연적 위계질서로 완전히 변형되었다. 

또한, 이 종법제도는 그 범위를 넓혀서 천자(天子)를 정점으로 한 국가의 위계질서인 봉건제도로 다시 그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주나라 말기인 춘추전국시대(BC 770~ BC 221년)에 중국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가장 큰 화두는 당시 사회의 혼란을 수습하고 보편적인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서, 크게 세 가지 주장이 생겼다. 

그 중 첫 번째는 다시 주나라의 문왕, 무왕 그리고 주공 시절의 봉건질서로 돌아가자는 공자(孔子, BC 551 ~ BC 479년)의 주장이었다. 

두 번째는 백이와 숙제(BC 1100년 경)가 염원했던 고대 성인정치로 돌아가자는 묵자(墨子, BC 470[?]~ BC 391[?])의 주장이었다. 

마지막은 원시 농경 사회로 돌아가자는 노자(老子, BC 6세기, ? ~ ?)의 주장이었다.

공자(孔子)는 주나라 때의 유(儒)를 종합해 이것을 학문으로 만들었다. 

공자는 당시 주나라의 종법 제도에 크게 심취해 있었다. 
  


(공자)


따라서 공자가 구현하고 싶었던 이상적인 국가 형태는 바로 주나라 초기의 종법제도에 바탕을 둔 봉건제 국가였다.

유학(儒學)은 학문이 된 유(儒)의 전통으로서 한나라(漢, BC 206년 ~ AD 220년)의 동중서(董仲舒, BC 179 ~ BC 104년)가 이를 계승하였다. 

동중서는 공자의 유학을 중국의 국교이자 정치 철학인 국가 유교주의로 발전시켰다. 

동중서가 국가 유교주의를 표방하면서 주장한 것이 삼강(三綱)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서 보통 삼강은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꼭 지켜야할 근본적인 도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벼리 강(綱)이라는 글자이다.

'벼리'라는 것은 그물을 잡아당길 때 사용하는 그물코에 묶어놓은 동아줄을 말한다. 



(벼리와 그물)


말하자면 강(綱)은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가 고기가 모이면 벼리를 잡아당겨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 즉 사물을 옭아매는 밧줄을 말한다. 

결국, 강(綱)의 의미는 그물이 벼리에서 벗어날 수 없듯 인간들도 이러한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중서가 말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도리는 바로 신분적 위계질서, 즉 종법이었다. 

다시 말해 신하 위에는 왕이 있고 아들 위에는 아버지가 있고 아내 위에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삼감행실)


동중서의 주장에 의하면, 이 신분적 수직관계가 절대적인 것이고 또한 자신이 맡은 가족 내 역할에 충실할 때 국가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국가 유교주의는 가족제도를 종교와 정치의 영역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동중서가 말한 삼강의 윤리 속에서, 사람은 태어난 순서와 성별에 따라 자기의 역할이 정해진다. 

능력과 상관없이 맏아들은 가문(혹은 왕위)을 이어받는다. 

여자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야 하고 일단 결혼을 하면 남편이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남편을 따라야 했다. 


(삼강 중에서 부의부강)


이러한 관계는 그 사람이 맡은 역할만이 중요할 뿐 개인의 특성과 욕망이 무시된다는 큰 단점이 있다.

이런 제도 아래서 개인의 사회적 역할이 개인의 개성보다 중요했고 이 때문에 개인의 체면이 매우 중요해졌다. 

여기서, 체면은 사회가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이었다. 

만약 사회가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는 체면을 잃게 되고, 체면을 잃는 순간 그는 수치심에 시달리게 된다. 

유교에서 도덕적인 인간은 수치를 알고 사회적 기대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도덕은 많이 다르다. 

참조1 : [종법제도 1] 종법제도로 바라본 한국인
참조2 : [종법제도 3] 종법제도로 바라본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