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종법제도 1] 종법제도로 바라본 한국인

어느 날, 막내아이와 병원에 함께 갔다.

이때 의사선생님이 막내에게 ‘이곳이 아프니?’라고 물으니, 막내아이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이때 나는 어른에게 대답할 때는 ‘네’라고 대답하도록 막내에게 교육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마도 막내가 나중에 어른이 된 후 이런 행동 때문에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차별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정신적인 뿌리는 고대 그리스이고, 구체적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고 이런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플라톤; Πλάτων)



하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서 ‘현재 나의 행동과 사고의 기반은 어디에 두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내 행동은 중국의 유학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논어를 조금 보았지만 이런 의문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자의 기원을 설명하는 책에서 주나라의 종법제도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인터넷에서 종법제도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 후, 현재 나의 행동은이 약 3,000년 전에 존재했던 주(周)나라의 종법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周)나라는 BC 1122부터 BC 256년까지 존재했었고,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나라였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이 주나라 때 확립된 '종법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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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 최고의 신은 계속 하늘(天)이었다.

하지만, 은(殷)나라 [또는 상(商)나라, BC 1600-BC 1046년]의 왕인 조갑(祖甲)이 처음으로 하늘(天) 대신 자신의 시조(始祖)인 제곡(帝嚳)을 국가의 최고의 신으로 삼았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세력 범위)


이것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종교 개혁이었고, 이로서 고대 중국에서 조상 신이 처음으로 최고의 영적 존재로 등장했다.

이렇게 해서, 고대 중국의 영적인 위계는 조상신과 그의 후손, 즉 혈연적 위계 관계로 바뀌었다. 

이것이 종법(宗法)의 시작이다. 물론 종법이 완성된 것은 은나라를 정복한 주(周)나라 때 이었다.

주(周)나라는 중국의 황하 강의 큰 지류인 위수(渭水)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은나라의 부속국이었다.

하지만, 이후 힘을 키운 주(周)는 기원전 1040년 은나라를 결국 멸망시켰다.

주나라(BC 1122 ~ BC 256년)는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서안(西安, 시안)에 수도를 세우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은나라 지식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서안의 위치)


이러한 지식인들 중 제례 전문가였던 유(儒) 집단이 있었다. 

주나라는 유(儒) 집단을 통해서 은나라의 조갑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족보를 체계화하였고 종법(宗法)제도를 완성했다.

종법 제도는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씨족의 제사 제도를 말한다. 

종법은 다시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으로 구별되는데, 대종은 맏아들로 이어오는 직계 가문을 말하며 소종은 맏아들이 아닌 다른 아들들로 이루어진 방계 가문이다.

맏아들 가문은 씨족 안에서 종가(宗家)로서 씨족을 대표해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또한 종가의 맏아들은 씨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씨족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할 권리를 가졌고, 필요할 때는 씨족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했다.

당시 주나라는 가정의 신분 질서인 종법을 국가차원으로 크게 확대시킨 봉건제도(封建制度)를 도입했다. 

봉건제도의 핵심은 왕위는 왕실의 맏아들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고, 그 외 다른 아들들(왕자)은 맏아들의 신하인 제후(諸侯)로 봉하는 것이었다.

 (봉건제도 설명도)


결국 주나라 때 완성된 종법제도는 후일 동양사회의 뿌리 깊은 혈연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종법제도를 응용하여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확립하였고, 이에 따르면 중국 외의 지역은 오랑케라는 화이(華夷)의 관념이 시작되었다. 

또한 이런 화이사상에 의해서, 중국은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웃 나라들을 오랑캐로 규정하고, 이들을 예(禮)로써 가르쳐야 한다는 교화론(敎化論)을 주장했다.

은나라 때 제례 전문가 집단인 유(儒) 집단은 원래 무당(샤먼)이었다. 

이들은 주나라 때 왕실의 족보를 정리하였고 최고의 신의 자리에 왕의 조상신을 올려놓았다.

따라서 주나라의 왕은 최고신인 자신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주 왕실의 조상신이 둘이라는 것이다.